주제로 본 한국사한국의 건국 신화 읽기5. 가야의 건국 설화 읽기

2) 대가야국 이진아시왕 건국 신화의 전승과 성립

가야 지역에는 가락국의 김수로왕 건국 신화 외에도 또 다른 건국 신화가 전해진다. 『신증동국여지승람』 29권 고령현 건치연혁 조에 전해지는 대가야의 이진아시왕(伊珍阿豉王) 신화이다. 이는 신라 말의 유학자 최치원이 해인사 승려인 이정(利貞)의 전기에 기록한 그의 조상들의 계보이다. 그 내용을 먼저 살펴보자

〔사료 5-2-01〕『신증동국여지승람』 29권 고령현 건치연혁 조

(가) 본래 대가야국이 있던 곳이다. 시조 이진아시왕(伊珍阿豉王; 또는 내진주지(內珍朱智))으로부터 도설지왕(道設智王)에 이르기까지 대략 16대 520년 동안 존속하였다.

(나) 최치원이 지은 「석이정전(釋利貞傳)」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가야 산신 정견 모주(正見母主)는 천신 이비가지(夷毗訶之)에게 응감하여, 대가야의 왕 뇌질주일(惱窒朱日)과 금관국의 왕 뇌질청예(惱窒靑裔) 두 사람을 낳았다. 뇌질주일은 이진아시왕의 별칭이고, 청예는 수로왕의 별칭이다.” 그러나 수로왕의 고기(古記)에 나오는 여섯 알 이야기와 더불어 모두 허황된 것이어서 믿을 것이 못 된다.

(다) 또 최치원이 지은 「석순응전(釋順應傳)」을 보면 이렇게 씌어 있다. “대가야국의 월광 태자(月光太子)는 정견 모주의 10세손이요, 그의 아버지는 이뇌왕(異惱王)이다. 이뇌왕은 신라의 영이찬(迎夷粲) 비지배(比枝輩)의 딸에게 장가 들어 태자를 낳으니, 이뇌왕은 뇌질주일의 8세손이다.” 그러나 역시 참고할 것이 못 된다.

그리고 이와 유사한 내용이 『삼국사기』 권 34 지리지 고령군(高靈郡) 조에 전한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료 5-2-02〕 『삼국사기』 권 34 지리지 고령군(高靈郡) 조

고령군은 본래 대가야국(大加耶國)으로서 시조 이진아시왕(伊珍阿豉王;【 또는 내진주지(內珍朱智))】으로부터 도설지왕(道設智王)에 이르기까지 무릇 16세 520년이었다. 진흥 대왕(眞興大王)이 쳐서 멸망시키고, 그 땅을 대가야군(大加耶郡)으로 삼았다.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바꾸었고, 지금도 그대로 따르고 있다.

▣ 이진아시왕 신화의 구성

위 「가락국기」의 수로왕 건국 설화가 금관가야의 건국 설화라고 한다면, 위 설화는 대가야의 건국 설화이다.

신화의 전체적인 구조는 천신(天神)과 지모 신(地母神)의 결합에 의해 건국 시조가 출생한다는 점에서 단군 신화, 주몽 신화 등의 천손강림형 신화들과 그 내용 및 구조가 매우 유사하다. 다만 알에서 태어나는 난생 신화의 요소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본래의 건국 신화가 없었다기보다는 「석이정전」이라는 전기의 성격상 계보만을 간략히 소개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내용이 생략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고령 양전동 암각화가 있는 곳의 지명이 ‘알터’로 전해지고 있으며, 정견 모주가 알을 두 개 낳아 하나는 놔두고 하나는 낙동강 하류로 흘려보냈다는 민간 전승이 있는 것으로 보아, 본래는 난생 설화적 요소를 갖추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대가야의 이 신화에는 지모 신의 위상이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다른 천손강림형 신화와는 다른 점을 찾아볼 수 있다. 즉 천신 이비가지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수로 신화와는 달리 천손강림 여부가 분명치 않고 단순히 감응에 그치고 있다. 감응의 모티브는 부여 동명 신화에서도 나타나는 바이다. 그런데 부여 동명 신화는 주몽 신화로 발전하면서 천신이 인격 신으로서 실제로 지상에 내려오는 내용으로 변천하게 된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가야의 천신 이비가지의 감응 형태는 건국 신화의 초기 모습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 건국 신화에서 주인공은 가야 산신인 정견 모주이다. 신화에서 지모 신적인 성격이 상징하는 것은 아무래도 토착 재지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대가야의 건국 과정에서 이 지역의 재지 세력이 갖는 위상과 역할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지모 신으로서의 정견 모주에 대한 인식은 「석순응전」에서 대가야국의 월광 태자를 ‘이비가지의 10세손’이라고 하지 않고, ‘정견의 10세손’이라고 표현한 데에서도 다시 확인할 수 있겠다.

이와 같이 여자 산신[女山神]이 건국 시조를 낳았다는 이야기는 신라에서 선도산 성모(仙桃山聖母)가 박혁거세를 낳았다는 이야기와 그 모티브가 다르지 않다. 이는 신라나 대가야 지역을 포함하는 현재의 경상도 일대에서 산신을 숭배하는 재지 세력이 건국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곳곳에 형성되어 있던 건국 신화의 이러한 성격을 반영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고령 양전동 암각화
출처: 김태식 저, 『미완의 문명 7백년 가야사』(1), 2002, 102쪽

▣ 이진아시왕과 수로왕이 형제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한편 이 신화가 가야산 및 대가야국과 관련된 신화로서 고령 지방의 전승임에도 불구하고, 대가야 이진아시왕과 금관국 수로왕을 형제 관계로 묘사하고 있다. 이들이 정견 모주의 아들로 형제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먼저 나라 이름을 ‘대가야’ 혹은 ‘금관국’이라고 하고 있어, 가야 연맹 중심 국가로서의 주도권을 행사한다는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이 설화에서는 이 두 건국 시조를 형제 관계로 설정함으로써 이들이 가야 지역을 둘로 나누어 다스렸음을 시사한다. 『삼국사기』 악지(樂志)에는 가야 출신 악사 우륵(于勒)이 지은 12곡(曲) 중 상가라도(上加羅都), 하가라도(下加羅都)라는 이름이 있는데, 상⋅하 가야 연맹에 의한 분할 통치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이는 대가야가 등장하면서 내세운 명분으로 추정된다.

현재 가야사에 대한 연구 성과로 보아 금관가야가 먼저 연맹체의 중심 국가가 되었고 대가야는 5세기 이후에야 가야 연맹을 주도했음이 밝혀지고 있다. 문헌 기록상에 먼저 등장하는 이름인 구야국(狗耶國)은 김해 지역의 금관가야이고, 나중에 등장하는 이름인 가야국(加耶國)은 고령의 대가야이다. 이 점은 고고 자료의 현상에서도 잘 드러난다. 4세기 이전 가야 지역의 고분과 부장품 등을 살펴보면, 김해 대성동 고분군이 규모도 가장 클뿐더러 부장품의 내용 또한 매우 풍부한 데 비해, 고령 지역에서 이 같은 규모의 것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5세기 이후에는 이와는 반대로 고령 지산동 고분군이 가장 크며, 김해 지역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작다. 그리고 금관가야 건국 신화에서는 단지 김수로왕 신화를 통해 금관가야국만 언급하는 데 비해, 대가야 건국 신화에서는 대가야국의 시조인 뇌질주일과 금관가야국의 시조 뇌질청예(수로왕)를 형제 관계로 언급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대가야의 건국 신화는 김수로왕 신화보다는 후일에 성립한 것으로 보이며, 일단 금관가야가 세력을 잃고 대가야가 가야 연맹체의 연맹장 지위를 차지한 5세기 이후, 즉 후기 가야 연맹 단계의 역사적 상황까지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야의 건국 신화는 지역과 시기를 달리하는 서로 다른 계통의 건국 설화가 만들어졌고, 그것이 서로 통합되지 못한 채 따로따로 전해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가야가 하나의 통합된 나라로 발전하지 못한 채 다수의 소국을 기반으로 금관가야와 대가야가 서로 연맹장적 지위를 교체해 갔던 역사적 특성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1)
출처: 문화재청
고령 지산동 고분군(2)
출처: 문화재청
지산동 발굴 현장
출처: 문화재청
지산동 35호분 출토 토기
출처: 문화재청
지산동 32호분 출토 금동관
출처: 문화재청

▣ 대가야의 이진아시왕 신화는 언제 만들어졌을까

현재 전하는 대가야의 건국 신화 역시 후대에 여러 과정을 거쳐 변화, 윤색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대가야 왕의 별칭인 ‘주일(朱日)’과 ‘청예(靑裔)’가 중국의 옛 전설에 의해 윤색된 것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대가야 신화는 수로 신화와는 달리 개국 신화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전하는 문헌이 없기 때문에 그 형성 과정을 자세히 알 수 없다.

대가야는 562년 신라에 의해 무력으로 멸망되었기에 자신들의 역사나 개국 신화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가야의 개국 신화가 정리될 수 있었던 시기는 대략 다음과 같이 추정할 수 있다. ‘정견 모주’의 ‘정견(正見)’이나 ‘월광 태자’의 ‘월광(月光)’이라는 이름은 불교적인 색채가 두드러진다. 따라서 이러한 이름처럼 불교적 윤색이 더해질 수 있었던 시기를 고려하면, 대가야가 신라와 결혼 동맹을 맺었던 522년 이후 562년 멸망 이전까지의 시기를 첫 번째 후보로 꼽을 수 있고, 그 다음으로는 승려인 ‘석순흥(釋順應)’과 ‘석이정(釋利貞)’ 등이 해인사(海印寺)를 창건하던 9세기 초를 두 번째 후보로 꼽을 수 있다. 이 둘 중에서는 아마도 가야산에 해인사를 창건하던 무렵이 보다 유력하리라 짐작된다.

이 시기는 신라의 중앙 정치 무대에서 가락국 출신의 김유신계가 몰락하였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위에서 보다시피 대가야의 이진아시왕 신화에서 대가야의 시조와 가락국의 수로왕이 형제간이라는 형태로 묘사된 점은 이러한 변화와 맞물려 있다고 생각된다.

대가야 건국 신화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 해인사 창건의 두 주역인 석이정(釋利貞)과 석순응(釋順應), 그리고 이들의 전기를 지었던 최치원(崔致遠)이다. 순응(順應)과 이정(利貞)은 대가야 왕족의 후손으로서 가야계(加耶系) 신라인이었던 이들은 옛 가야 땅에서 불교를 진흥시키려 가야산 해인사를 창건하였으며, 아마도 이때 대가야와 관련된 신화를 정리, 보급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최치원이 두 사람의 전기에 대가야의 개국 신화를 기록한 것은, 두 승려의 출신지였던 이 지역에 대가야의 건국 시조에 대한 전승이 크게 보급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같이 현재 전하는 대가야의 신화는 9세기 무렵에 정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이 신화 자체가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졌다는 뜻은 아니다. 대가야의 시조로서 ‘정견 모주(正見母主)’라는 여신이 언급된 것으로 보아, 이 건국 설화의 원형을 이루는 건국 설화의 기본 구조는 상당히 이른 시기에 나타났을 가능성도 높다. 어쩌면 소국으로서 대가야 지역의 시조 전승이 이른 시기에 먼저 만들어지고, 대가야 시조와 금관가야의 시조를 형제 관계로 만드는 내용은 5세기 이후가 될 것이며, 그 뒤 통일신라 초기에 새로운 내용이 좀 더 윤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5세기 이후에 등장한 대가야의 건국 신화임에도 천신보다는 지모 신의 위상이 두드러진 초기 전승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이유도, 대가야가 소국을 형성하는 단계에서 이 정견 모주(正見母主)를 중심으로 하는 시조 전승이 성립하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16세기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 권 30 합천군 사묘(詞廟) 조에는 여신인 ‘정견 모주’가 ‘정견 천왕(正見天王)’으로 등장한다. 즉 어느 때인지는 모르지만 남신(男神) 사상으로 전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지역에서 전승되는 신화나 전승은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게 된다. 따라서 가야의 건국 신화인 수로왕 신화나 이진아시왕 신화 역시 그 변천 과정을 염두에 두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상의 검토를 간략히 정리하도록 하자.

가야의 건국 신화는 수로 신화와 정견 모주-이진아시왕 신화라는 두 가지 형태가 전승되고 있는데, 무엇이 가야 건국 신화의 모본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일반적으로 수로왕의 건국 신화가 1단계인 초기 국가의 개국 신화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형제 관계라는 설정을 통해 새로이 연맹 왕국의 모습을 전하는 이진아시왕 건국 신화는 2단계 개국 신화로 이해된다. 그런데 이진아시왕 신화에 등장하는 ‘정견 모주’가 가야 전 지역의 시조신이라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수로 신화나 이진아시왕 신화 등 가야의 건국 신화는 김해 지역이나 고령 지역을 벗어나 가야 전체를 포용할 만한 보편성을 지니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대가야 신화를 후대의 것으로 이해하는 이유는, 가야의 발전 과정을 전기 가야와 후기 가야로 나누면서 전자의 중심을 가락국, 후자의 중심을 대가야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가야의 신화 역시 5세기 대 이후의 정치적 발전 과정에서 대가야를 표방하며 주변 지역 전체의 정통성을 계승하고자 한 의미를 반영했을 뿐이다. 가락국 신화나 이러한 건국 신화는 가락국과 대가야를 비롯한 가야 제국에도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신라에 의해 멸망당했기 때문에 전승되지 못한 것으로 짐작된다.

520년대 후기 가야 연맹 소국
출처: 김태식 저, 『미완의 문명 7백년 가야사』(1), 2002, 189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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