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로 보는 한국사형정풍속도(刑政風俗圖)를 통해 본 조선의 형정(刑政)2. 일재 김윤보 형정풍속도의 종류와 특징

1) 평양 출신 풍속화가 김윤보

현재 미술사학 및 사학계에서 일재(一齋) 김윤보(金允輔, 1865~1938)에 관한 학술 연구가 전무하여 그의 생애와 작품 활동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지만, 일제 강점기에 발행되었던 〈매일신보(每日申報)〉 등을 통해 그의 작품 활동에 관한 단편적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김윤보는 1865년 평양에 태어나 일제 시기 그곳을 중심으로 산수, 인물, 풍속화 등에 두각을 보였던 동양화가였다. 인터뷰를 위해 평양 상수리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았던 기자에 따르면, 그는 방안의 네 벽에 산수와 풍속도를 걸어 두고, 마당에는 화분을 배치한 운치 있는 기와집에 살았다고 한다. 그는 평양 감영도화서 화원 김기엽(金基燁)으로부터 사사를 받아 그림에 입문하였다.

1913년 평양에 설립된 기성서화미술회(平壤書畵美術會)에서 그는 잠시 전통 서화를 가르치는 교편을 잡기도 하였다. 이후 김윤보는 동경 문부성 미술전람회에서 2폭의 그림이 입선되어 화단에 등단했고, 2폭의 출품작도 수백 원씩에 팔리는 등 실력을 인정받았다. 1922년에는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에 평남지사의 권유로 〈하당독서(夏堂讀書)〉라는 작품을 출품하여 동양화 부문에 입선하면서 조선화단에 명성을 날렸다.

〈도1〉 〈매일신보〉 1922년 5월 21일 조선풍속화를…

그는 이듬해 동경으로 들어가 일본인들에게 화조, 산수, 인물 등의 명화 등을 그려 대찬사를 받았고, 이어서 〈조선고시속도(朝鮮古時俗圖)〉를 그려 천황에게 바치기도 하였다. 이후 눈에 띄는 수상 경력은 찾을 수 없지만, 1938년 평양 자택에서 사망하기 전까지 지속적으로 작품 활동을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사망 한 해 전인 1937년 조선 총독부 법무국 행형과에서 그의 『형정도첩(刑政圖帖)』을 흑백 도판으로 엮고 개별 그림마다 해설을 덧붙인 『사법제도연혁도보(司法制度沿革圖譜)』를 제작했다. 도록 제작을 목적으로 『형정도첩』이 제작된 것인지, 그 반대인지 구체적인 연관 관계를 더 조사할 필요가 있겠지만, 이런 사실은 그와 총독부와의 관계뿐 아니라 『형정도첩』 제작 배경을 어느 정도 짐작하게 한다.

친일 행적과 별개로 그는 화가로서 “필법이 주밀하고 관찰력이 세밀하여 일찍이 세상 사람이 한가지로 경탄”할 재주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그린 형정도를 살펴보면 범죄와 형벌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이해 없이 표현하기 어려운 묘사가 여러 곳에서 나타나 그 재능을 실감하게 한다.

이처럼 일재 김윤보는 평생 평양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산수, 인물, 화조, 풍속화 등에 탁월한 재능을 인정받았던 화가였지만, 천황에게 그림을 헌상하고, 일본인 도지사의 권유로 미술전람회에 작품을 출품하고, 총독부와 형정도록을 발간하는 등 친일 행적에 대한 오점도 발견된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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