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로 본 한국사고종과 대한제국의 개혁과 좌절5. 고종 개혁 정책의 좌절과 평가1) 외교 전략의 모색과 좌절

가. 고종의 한반도 중립화론과 열강의 거부

대한제국은 한반도에 대한 열강들의 정책과 주변정세의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거나 부응하지 못한 채, 열강으로부터의 후원과 열강 간의 균형을 추구했다. 고종 황제는 대한제국의 독립과 자주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변 열강들의 참여와 보장에 의한 한반도의 중립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사료 5-1-01〕「고종 황제의 동양삼국 연대론의 견해」

“구미열국과의 교제는 아무리 친밀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인종과 종교가 다르므로 가끔씩 어떤 일국과 갈등이 생겼을[釁隙] 때는 인종 종교상의 관계에서 그 향배를 결정함은 자연스런 추세이니 어찌 깊이 돌아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라가 약소하더라도 서로 협력하면 강대국에 대항할 수 있는 법이며, 만약 이와 반대로 약소국으로서 각각 고립하여 돌아보지 않을 때는 그 세력이 일층 취약하여 끝내 강국의 병탄을 면할 수 없다. 무릇 동양에서 국가로서 독립을 유지하는 것은 일본, 청국, 한국의 세 나라를 손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중 일본이 제일 강국으로 있기 때문에 그를 맹주로 하고 청국과 한국이 연횡(連衡)하면 열강의 침략을 예방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과연 그렇다면 지금으로서 노력해야 할 것은 이상 삼국이 각기 평화를 유지하고 나아가 화친, 돈독한 화목을 꾀하는 데 있다.

(출전 : 『일본외교문서』32권, 기밀 제71호, 1899년 7월 26일, 942~943쪽)

[사료 설명 : 1899년 러시아의 함경도 조차 추진설이 유포되자 고종 황제는 이를 동양평화를 교란하는 행위로 인식하여 일본 공사에게 협조를 요청하고, 삼국의 상호 연계하여 대응하자고 하였다.]

먼저 고종은 역대 주한 미국 공사들에게 미국 정부가 열강들에 한국의 중립화를 제의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고종은 이미 1887년 주한 미국 공사관 서기관이었던 알렌(Horace Allen)에게 “어떻게 하면 미국 정부와 미국 국민들이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되어 한국이 중국의 압제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하고 문의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알렌은 “미국 회사에게 금광을 주십시오”라고 대답한 바 있었다. 1) 이후 고종 황제는 열강에 이권을 주면 한국 문제에 개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는 철도, 전신 등 건설을 위한 미국 회사의 제안을 호의적으로 고려하였고, 청일전쟁 후 미국 모스(Morse) 회사에 운산 금광 개발권을 양여해 주었다. 미국이 “풍요하고도 극히 중요한 경제적 이해”를 보유하고 있는 조선에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한국 문제에 대해 철저히 불개입 원칙을 고수하고 있었다.

고종 황제는 의화단 사건으로 청이 분할 위기에 놓이자 1900년 8월 조병식을 특명 전권 공사로 일본에 파견하여 일본 정부에 한국을 스위스⋅벨기에와 같이 중립화하는 데 동의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렇지만 일본 정부는 한반도의 장악이 전략적 목표였으므로 중립화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그러자 조병식은 주일 미국 공사 버크(Alfred E. Buck)에게 미국 정부가 열강과 협력해서 한국의 독립과 중립에 관한 국제적인 보장을 확보하는 데 노력해 줄 것을 거듭 요청했으나 역시 거절당하였다.

조병식
출처: 한철호, 『한국 근대 주일한국공사의 파견과 활동』, 2010, 302쪽

〔사료 5-1-02〕「한국의 중립화에 관한 건」

“1902년 9월 20일 오전 11시 15분 발신

  런던, 하야시(곤스케) 귀하

제94호. 주일(駐日) 미합중국 공사(公使)가 나에게 극비사항으로 말하기를, 파블로프(Pavloff) 씨는 귀국 도중 이즈볼스키(Iswolsky) 씨와 함께 머물면서 한국의 장래문제에 관해 장시간 협의를 하여 일본, 러시아 및 미국이 공동 보장하는 전제로 한국의 중립화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함. 그리고 파블로프 씨는 앞으로 그 문제를 파리의 카시니(Casini) 백작과 협의할 예정이며, 이 세 명의 외교관들은 본국 정부에게 러시아 정부가 먼저 미국 정부와 접촉하여 그 문제의 주도권을 갖도록 설득하고자 공동건의를 하기로 했다고 함.

미국 공사가 또한 나에게 자신은 그 문제를 아무 논평 없이 본국 정부에 보고했다고 말했고, 나는 미국 정부가 그 문제로 러시아 정부로부터 접촉을 받으면 그 건에 대한 어떤 조치를 취하기 전에 일본 정부와 협의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취지의나의 희망을 미국 정부에 전달해 주도록 요청했음.

본관은 개인 의견으로, 일본은 한국에서 일본의 현재 지위를 손상하게 하는 어떠한 타협도 수락할 수 없고, 러시아 외교관들이 기도하는 조속한 한국 중립화 실현은 일본이 한국에서 갖는 우월한 입장을 파괴하게 될 것이므로, 만주(滿洲)에서 러시아가 취하는 행동을 일본이 저지할 수 없게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음.

버크 대령은 이상과 같은 나의 희망을 미국 정부에 보고하겠다고 약속했음.

위 사항은 극비이며 귀하만이 참고하도록.

위 사항을 혼노(本野) 씨와 타카히라[타카히라 주고로(高平小五郞), 주한 임시 대리공사] 씨에게 전송하고, 타카히라씨에게는 본관의 훈령으로 다음을 덧붙이기를 요망함:

본관은 위에 언급된 공동건의를 러시아 정부가 받아들일 것이라고 믿을 만한 이유를 가지고 있으므로, 귀하는 카시니 백작의 워싱턴 귀환 후 그의 움직임과 그 문제로 러시아 정부의 접촉이 있을 때 미국 정부의 태도를 예의 주시할 것.

(출전 : 『주한일본공사관기록』 18권, 2. 기밀본성래, 1902년 9월 20일, ‘한국의 중립화에 관한 건'(외무대신 고무라 주타로(小村壽太郞) ⇒ 주한 일본 공사 하야시 곤스케(林權助))

1)Fred H, Harrington, God, Mammon and the Japanese, Dr, Horace Allen and Korean-American Relations 1884~1905, University of Wisconsin Press, 1944, 130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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