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로 본 한국사한반도 신탁 통치안3. 모스크바 삼상 회의의 ‘조선에 관한 결정’2) 모스크바 삼상 회의에서의 미⋅소의 한국 문제 논의와 해결 방안

나. 모스크바 삼상 회의에서 소련이 제출한 한국 문제 해결 방안

소련은 ‘선 정부 수립, 후 신탁 통치(先 政府樹立, 後 信託統治)’를 대안으로 제출하였다. 그리고 신탁 통치 기간은 최소화할 것을 주장하였다. 해방 이전만 해도 계속되는 미국의 신탁 통치안 주장에 대하여 소련은 마지못해 동의하는 태도를 취하며 직접적인 언급을 회피했었다. 이제 소련은 신탁 통치 이전에 먼저 정부를 수립할 것을 주장함으로써 미국의 계획에 제동을 걸었다. 미국의 제안은 비정치적⋅행정 실무적 문제를 우선시키고, 국제적인 해결 방식을 주장함으로써 자신들의 주도권과 우세를 보장받으려는 것이었다. 반면 소련은 해방 이후 한국 내 정세나 좌⋅우 세력 관계가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하였고, 보다 본질적인 정부 수립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자신들의 주도권을 관철시키려 하였다.

이러한 미⋅소 간 정부 수립 방안의 차이는 한국의 독립에 대한 양국의 접근 방법의 차이를 보여 줌과 동시에 해방 이후 한반도 내부에 조성되었던 정치 정세를 반영하였다. 미국은 점령 이후 군정을 설치하여 직접 남한을 통치하였다. 그리고 이후 신탁 통치하에서 집행 위원회라는 국제 행정 기구를 설치하고, 여기에 한국인들을 행정 요원으로 참여시킬 것을 계획하였다. 반면 소련군은 북한 점령 이후 인민 위원회에 자치권을 부여하였고, 조만식(曺晩植)과 김일성(金日成)의 합작을 성사시키는 등 자신들의 조정과 비호하에 일찌감치 정부 수립을 위한 토대를 쌓고 있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남한에서도 좌익 세력이 우익에 비하여 조직적으로 우세를 점하는 것으로 평가하였다.

조만식

〔사료 3-2-01〕 모스크바 삼상 회의의 한국 문제 논의 경과

4. 한국

합의된 의제에서 세 번째 항목은 “독립된 한국 정부의 설립을 염두에 둔 한국의 통일된 행정부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 단어 선택은 미국의 제안으로 적용된 것이었는데, 이는 원래 제안되었던 것, 즉 “한국을 위한 독립적인 정부의 설립”을 바꾸기 위한 것이었다. 12월 16일 회담의 첫 회의에서 이 주제가 제출되었을 때, 번즈는 해리만 대사가 몰로토프에게 1945년 11월 8일에 보낸 편지를 배포하고, 한국의 소련 지휘관이 미국의 지휘관과 협의할 것을 요구하였는데, 한국에서의 통신의 합리적인 개선, 상업, 금융, 그리고 다른 미해결의 문제들을 조정할 목적을 위한 것이었다.(Doc. A, Encl. 4, p. H-41).

몰로토프는 이 편지를 통하여 생필품의 교환, 기차 운영의 재개, 선적, 금융 정책, 유민,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을 처리하는 것에 반대하였다. 그는 번즈가 그것들을 이 의제에 대한 주제와 연결시키려는 시도에 놀랐다고 말했는데, 이 의제는 한국 정부에 관한 전반적인 문제이며, 또 그는 이에 대하여 토론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언급하였다. 그는 번즈가 이 항목(the item)에 추가한 “한국을 위한 통일된 행정부”의 문제와, 또 언급되었던 신탁 통치의 문제가 이 이슈(the issue)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고 단언하였다. 그는 한국에 관한 얄타의 토론을 검토하도록 권고하였다. 국무 장관 번즈는 해리만의 편지에 언급되었던 문제들이 한국의 통일된 행정부의 성취에 필수적인 단계(step)로, 이는 신탁 통치에 앞서 필요한 것이며, 결국 독립적인 한국 정부로 이끌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Doc. A, p. H-27)

다음 날 번즈는 미국의 대한 정책에 대한 성명서를 배포하였다. 성명서는 미국이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의정서를 통하여 독립된 한국의 창조를 약속했다는 것으로 시작하면서, 한국의 독립을 가능한 빨리 성취할 것을 촉구했다. 이를 위하여 한국을 군사 행정부의 두 지역으로 분단시키는 것을 막기 위한 즉각적인 행동을 제안했다. 또 유엔 헌장의 원칙에 부합해서 행해질 4강대국 신탁 통치에 앞서 일시적이지만 통일된 행정부를 창조할 것을 제안하였다. 독립된 한국 정부는 5년 내에 형성될 것으로 예측했다. (Doc. B, Encl. 2, p. H-47; Doc. b, p. H-45)

몰로토프는 미국의 제안을 연구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선언하였고, 12월 20일의 다섯 번째 회의가 되어서야 그 주제를 토론할 준비가 되었음을 통보해 왔다. 그는 소련 정부가 한국을 위한 4대국 신탁 통치에 동의하였음을 인정했지만, 이것을 급박한 문제로 보기보다는 장기적인 것으로 묘사하였다(characterize). 그리고 그는 한국에 대한 소련의 제안서를 내놓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국에 임시 민주 정부가 만들어져야 하며, 이 임시 정부는 한국의 산업과 교통, 농업, 그리고 한국의 민족 문화 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모든 임무를 맡는다. 한국에 있는 미⋅소 사령부 대표들의 합동 위원회(Joint Commission)는 임시 정부의 구성을 도와야 하며, 한국의 민주 정당 및 사회단체들과의 협의를 통하여 소련과 미국 정부가 고려할 수 있는 권고안들을 제출하여야 한다. 합동 위원회는 또한 미국, 소련, 영국, 그리고 중국이 함께할 수도 있는 신탁 통치 정책(measure)을 수립하여야 한다. 그 동안 한국의 미⋅소 사령부 대표들은 2주일 이내에 만나 양 지역의 긴급한 문제들을 논의하고(consider), 행정⋅경제(administrative-economic) 영역에서 미⋅소 사령부 간의 영구적인 연락 관계를 설립하는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Doc. H, Encl. 1, p. H-97).

다음 날, 세 장관 사이의 비공식 대화 중에, 번즈 국무 장관은 소련의 제안을 두 가지 수정과 함께 미국이 받아들일 의지가 있음을 내비쳤다(Doc. I, p. H-99). 첫 번째는 합동 위원회가 수립한 권고안을 미국과 소련 정부뿐만 아니라 중국과 영국 정부에도 제출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한국 임시 정부와의 협의가, 합동 위원회에 의하여 제안된 신탁 통치 방안이 4대국에 의하여 고려될 수 있도록 권고안 제출 이후에 이루어지는 것을 명백히 하는 것이었다(Doc. I, Encl. 2, p. H-10). 12월 22일 몰로토프는 미국 측 수정안을 받아들였으며, 문서는 최종 전문(final text)의 준비를 위한 기초 위원회(drafting committee)에 회부되었다(Doc. N, p. H-113). 이 최종 전문(final text)은 12월 27일 회의 폐회 때 사인된 공동 성명에 포함되었으며(Doc. W, p. H-141), 12월 30일 회의에 대한 방송(broadcast report)에서 번즈에 의하여 일상적인 언어로 논의되었다.

(출처: Handbook of Far Eastern Conference Discussion, H-13∼15)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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