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로 본 한국사고종과 대한제국의 개혁과 좌절2. 대한제국의 수립과정3) 독립협회와 대한제국의 상징화 작업

라. 대한제국의 국가 기념일 행사

고종 황제는 1897년 황제탄신일인 음력 7월 25일을 만수성절(萬壽聖節)로 공포하였고, 황태자의 탄신일인 음력 2월 8일을 천추경절(千秋慶節)로 정하였다. 또한 황제 즉위일인 음력 9월 17일은 계천기원절, 태조고황제 등극일인 음력 7월 16일을 개국기원절로 삼았다. 이에 따라 1897년 이후에는 각종 기념일이 국경일이 되면서 관청과 학교, 민가에 태극기가 게양되고 황제의 내탕금이 하사되어 축하연 혹은 축하회가 열려 경축하는 분위기가 고양되었다. 이러한 국기 게양과 국가 제창의 확산, 국경일의 축제화 등을 통해 대한제국은 대한제국의 신민들을 근대적 국민으로서 결집시키려고 하였다.

대례의궤
출처: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시 도록
황제어새
출처: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시 도록

〔사료 2-3-10〕만수성절의 축제 분위기 모습

“삼가 아룁니다. 음력 7월 25일은 만수성절입니다. 본회(독립 협회)에서 경축예식을 행하오니, 이날 오전 11시까지 독립관으로 왕림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 각 신문에 광고해서 연회에 참석하도록 했다. 그 초대장의 숫자가 기원절 때보다 많았다.

독립관 앞뜰에는 천막을 설치했는데, 그 아래 몇 천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대청 앞문에는 국기를 내걸었다. 그 앞에는 회장의 의자와 팔선상(八仙床)을 설치했는데, 상 위에는 연꽃과 연잎 두 송이와 수파련(壽波蓮) 두 개를 꽂은 여러 가지 고운 빛깔의 큰 등잔 4개가 있었다. 좌우로는 의자 1,000여 개를 늘어 놓았다. 푸른 소나무문 위에는 ‘만수성절(萬壽聖節)’이라는 커다란 금빛 네 글자 현판이 있었다. 상서로운 빛이 비추어 빛났다. 뜰의 네 모퉁이에는 다과를 나누는 장소를 차렸다. (중략)

관리와 백성 1천여 명과 각 학교의 학도 700여 명이 모두 머리에 꽃 한 송이를 꽂고, 나무 울타리에 둘러앉았다. 구경하는 사람들이 곧바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날은 상서로운 구름이 일었고 초목이 짙푸르게 무성했으며 화목한 분위기가 흘렀다.

오후 2시, 회장 윤치호가 경축회를 열게 된 대체적인 취지를 말하고, 회원 홍정후가 경사로운 일을 치하하는 축하의 말을 했다. 여러 회원들은 함께 황제에 대한 만세를 외치고 경축가를 불렀다. 악공들이 관현악기로 맞추어 연주했다. 노래가 끝난 후, 악공들은 이어서 다른 곡을 연주했다. 각 학도들은 차례로 애국가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다과를 내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소리가 맑았으며, 술잔을 따르는 손이 서로 뒤섞여 엇갈렸다.

7시에 회원들은 악대가 앞에서 이끄는 가운데 인화문 앞으로 나아가 만세를 부르고, 사무소 앞으로 돌아왔다. 매년 이날에는 단지 대궐 안에서만 경사를 치러왔다. 이에 이르러 독립 협회에서 만백성이 경축하는 연회를 처음 만들어, 충군애국하는 정성을 드러내었으니 사람들이 모두 크게 기뻐했다.

(출전 : 『대한계년사』권3, 1898년 9월)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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