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로 본 한국사한반도 신탁 통치안2.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연합국의 대한 정책과 신탁 통치안1) 미국의 전후 대한 구상과 한반도 신탁 통치안

바. 미 국무부 극동국 관리 랭던의 한반도 신탁 통치안 제안

한편 국무부 극동국 관리 랭던(William R. Langdon) 1) 은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지 불과 3개월 후인 1942년 2월이라는 이른 시기에, 한국은 상당 기간 열강의 보호와 지도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그는 식민 기간 동안 한국인들이 정치적으로 무기력해졌고 각 부문의 중요한 위치에서 배제됨에 따라 정부를 운영한 경험이 없다는 점, 군사적으로 한국인들은 무기 사용이 금지되었고 식민지하에서 자기 방위에 대한 개념이나 의지를 상실했다는 점, 경제적으로 한국 경제가 일본 경제에 완전히 종속되었다는 점 등을 들어 한국이 당장 독립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하였다. 즉 한국인들은 반일 정서와 독립 열망을 가지고 있지만 정치⋅군사⋅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당분간은 독립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 담당으로 볼 수 있는 랭던의 보고서로 판단하건대, 한국인의 자치 능력 결여로 열강의 보호와 감독이 필요하다는 신탁 통치 구상의 저류에 흐르는 사고방식이 미국 정부 내 실무 관리들 사이에서도 지배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윌리엄 랭던 (왼쪽에서 두 번째)
1)랭던은 1891년 터키에 거주하던 미국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직업 외교관이었다. 1933년 11월부터 1936년까지 서울 주재 미국 총영사를 지냈고, 1936∼37년에는 만주 심양에서, 1938∼41년에는 일본 동경에서 근무했다. 1941년 6월부터 국무부에서 일했고, 태평양 전쟁 기간에는 잠시 중국 곤명에서도 근무한 적이 있는 한국 통이자 아시아 통이었다. 종전 직후인 1945년 10월 20일 서울에 도착했고, 1945년 12월 18일 정치 고문에 임명되었다. 공식적으로는 1945년부터 1948년까지 서울 주재 미국 총영사, 1945년부터 1947년까지 주한 미군 사령관 정치 고문이자 미소 공동 위원회 미국 측 대표를 지냈다. 1948년 7월에 미국으로 귀국하였고, 1949년에는 싱가포르 주재 총영사를 지냈다. 1960년대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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