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로 본 한국사고종과 대한제국의 개혁과 좌절3. 대한제국의 권력구조와 정치 개혁운동2) 대한국 국제와 황제권의 위상

라. 궁내부 위상 강화와 근왕세력

광무 연간(1897~1907, 여기서는 1896~1904년까지 한정함) 정부대신 역임자들은 이전의 과거 출신자가 대다수를 차지하여 세도 가문 출신들이 상당수를 차지하면서도 명문 가문이 아닌 실무형 관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일부 서자이거나 무과출신들도 대신급에 오르고 있었다.

한편 대한제국 성립 이후 황제권의 위상 강화와 함께 궁내부의 위상이 강화되었고, 이어 궁내부 산하 국정 개혁의 추진기구의 설립에 따라 근왕세력의 부상이 이루어졌다. 궁내부에서 내장원경, 전환국장, 지계아문총재관 등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던 이용익을 비롯하여 이근택, 이기동, 길영수, 김영준. 주석면, 이유인 등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또한 궁내부 관리 중에서 이학균, 현상건, 이인영, 현영운, 박용화 등이 근왕 세력으로 활약하였다. 이들은 황제의 총애를 받아 여러 궁내부 중심의 개혁 기구와 원수부 이하 군부 관련 기관을 담당하면서 출세를 거듭했다. 특히 1902년 이후에는 기존 관료세력들의 견제를 이겨내며 점차 정치적 주도세력의 하나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들 근왕세력은 집권 양반 관료 세력과 같이 여러 계통의 학연, 지연, 혈연으로 연결될 수 없었으며 단지 황제의 신임만이 지위를 보장받고 있었기 때문에 정치적 사건에 연관되어 부침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대한제국기 정부의 정치적 구도는 기존의 정치적 주도권을 가진 주요 가문의 양반관료층과 이에 도전하는 황제 측근의 근왕세력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이들 사이에서 자신의 권력 독점을 강화∙유지하려는 고종 황제의 정치적 주도권이 지속적으로 행사되고 있었던 구조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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